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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광풍, 언제까지?

최성남 | 기사입력 2021/10/21 [17:17]

‘오징어 게임’ 광풍, 언제까지?

최성남 | 입력 : 2021/10/21 [17:17]

21-19) ‘오징어 게임광풍, 언제까지 

 

넷플릭스 1위는 보통 한두 주 후 다른 드라마로 바뀐다고 한다. 다른 Death Game과 무엇이 다르길래 아직도 오징어 게임열풍이 뜨거울까  이 드라마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모아놓아 그 자체가 소우주로서의 무대 같은 기능을 한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관리자들, 게임을 보는 VIP, 게임을 만든 오일남 할아버지라는 계층 구조에, 사회구조를 감시하는 경찰이 있다. 노래 가시나무 새처럼 내 안의 너무 많은 나와 동일시할 인물들과 상황들이 많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어떤 짓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기분 나쁘다. 이 드라마는 불편해서 회피했던 것을 보게 만든다. 얄밉게도 치밀한 구성과 세트의 미학, 근원적 그리움을 건드리는 어릴 때 하던 놀이는 끝까지 보게 유혹한다.

죽음 앞에 서면 본래적 나를 만난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엄마, 동생, 자식과 절절하게 살고픈 삶의 이야기를 안고 있다. 그래서 는 강력한 세계--존재. 이곳의 죽음은 삶과 맞짱뜨는 처연한 치열함이 있다. 이에 비해 다른 Death Game 영화들은 짜릿한 충동성을 풀어내는 배설에 머문다.

20세기의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기존의 철학과 달리 인간을 세계--존재관계 맺음의 존재로 보았다. 다른 존재와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출렁거리는 불안과 관계의 연약함에서 오는 무()에 대한 두려움과 종국에 죽음을 대면하게 만든다. 진솔한 관계를 맺는 것은 이런 어려움을 살아내기 위해서 아름다운 고민을 하며, 막연하게 살아가기로 살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영은 공기놀이에서 새벽이가 동생과 관계 맺음을 이어가게 하려고 죽음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린다. 지영은 책임져야 할 관계없이 살던 비본래적인 나를 벗어나 본래적인 나로 이행하며 죽을 수 있었다. 관계 맺음으로 생기는 불편함과 불안을 차단시키려는 현대인의 개인주의에 대해 오징어 게임은 찰지게 질문한다. 너 혼자 사는 세상이 사무치게 아름다운 삶인지를.....

관계망 시대에 필요한 홍익인간 정신

소유하기 위한 탐욕도, 돈은 많은데 재미없다고 죽음 게임을 만들어 억압된 분노를 터뜨리는 반항도 자연에는 없다. 죽음을 희롱하는 오일남 할아버지,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단역으로 출연한 게이머 모집책 공유, 상금을 탔는데 돌아와 프론트맨을 하는 이병헌. 이들은 속편에서 오징어 게임을 하려고 되돌아갈 기현 역의 이정재와 함께 돈에 얽힌 정서와 믿음 체계들을 드러내 보여줄 것이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속편에서 다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금은 그대로 둔채 밑바닥 생활을 하며 기현이 던진 질문! 속편은 오일남 할아버지처럼 씨니컬한 반항이 아닌 적극적인 저항을 하는 이야기로 답할 것 같다. 그러면 오징어 게임이 폭력적이라는 비판은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지 본래적인 질문을 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낀 존재의 유한성을 자각할 때 양심이 작동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의식하며 세계--존재로 주체적이며 긍정적인 삶을 살아내게 될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궁극적으로 관계를 삶의 필살기인 죽음으로 질문하는 영화다. 관계에 대한 질문은 남을 이롭게 하며 살라는 홍익인간 정신이 저절로 드러나게 한다. 관계망은 갈수록 촘촘하게 얽혀져서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고민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오징어 게임이 던져서 세계적인 광풍이 일어났을 것이다. 속편은 광풍을 뛰어넘어 폭풍의 눈처럼 고요한 곳에서 21세기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정근원(시니어 칼럼니스트, 심층심리분석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제1대학 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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