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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美현대문학 거장 코맥 매카시 89세로 사망:실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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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美현대문학 거장 코맥 매카시 89세로 사망

한서하 기자 | 기사입력 2023/06/14 [18:45]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美현대문학 거장 코맥 매카시 89세로 사망

한서하 기자 | 입력 : 2023/06/14 [18:45]

 

▲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 / 사진=NBC News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길'로 잘 알려진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코맥 매카시가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13일(현지시각) AP통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출판사 알프레드 A. 크토프는 매카시가 이날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의 자택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사인은 자연사로 알려졌다.

 

매카시는 인간 내면의 어둠을 간결하고 시적이나, 감상적이지 않은 산문 스타일로 전하며, 현대문학의 거장 반열에 오른 작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암울하고 허무주의적이며 종말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살인자·노인·부랑자 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1992년 NYT와 인터뷰에서 “유혈이 없는 삶이란 없다”며 “종(種)은 어떤 식으로든 개량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위험하다고 본다”고 했다.

 

2005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죽음 같은 어두움은 우리 삶 중심에 있는 주요 모티브"라고 답했다.

 

매카시는 때때로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는 했으나,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작가는 아니었다.

 

NYT는 “그는 은둔자는 아니었으나, 조용히 문학 주류 밖에서 살았다”며 “하지만 결국에는 ‘주류’가 그에게로 왔다”고 평했다.

 

CNN은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 작가이자, 작가들의 작가였던 인물"이라고 회고했다.

 

매카시는 1965년 첫 소설 ‘과수원지기’를 펴낸 후 ‘아우터 다크’(1968), ‘신의아이’(1973), ‘서트리’(1979) 등을 썼다.

 

매카시는 60대가 되어서야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 그는 1992년 ‘국경 삼부작’의 첫 작품인 ‘모두 다 예쁜 말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문학계 주류로 진입했다. 국경 삼부작은 ‘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 등 매카시의 장편소설 3편에 이른다.

 

이후 종말 이후 황폐해진 세상을 배회하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더 로드’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이를 자신의 북클럽 도서로 선정해 추천하며 더욱 유명해졌다.

 

그의 소설은 음울하고 남성적이며, 주목할만한 여성 인물이 없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평론가들이 그에 대한 찬사를 이어갔으며, 최근 몇 년 동안 노벨 문학상 후보로 매카시가 거론되기도 했다고 NYT는 전했다. 평론가 해롤드 블룸은 매카시를 필립 로스,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와 함께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소설가로 꼽았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건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영화화 되면서다. 토미 리 존스와 하비에르 바르뎀, 조슈 브롤린이 출연한 영화는 200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후 2007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더 로드'를 포함해 '선셋 리미티드', '카운슬러' 등도 영화로 제작됐다.

 

33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에서 태어난 그는 예일대 법학과를 졸업한 변호사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는 인근 빈민가 쪽에 더 자주 갔다고 한다.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일찍부터 스스로 존경받을 만한 시민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청소년기까지는 책을 즐겨 읽지 않았지만, 미 공군에 복무해 알래스카에 주둔하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자동차 부품 창고 등에서 일하며 소설을 썼던 그는, 결혼해 가정을 이룬 뒤에도 가난했다. 그의 두 번째 부인 영국 팝 가수 앤 딜라일은 "호수에서 목욕할 정도로 처절하게 빈곤하게 살았다"며 "그는 강연 제안이 들어오면 책에 할 말이 다 들어있다"고 거절했다"고 NYT에 전했다. 81년 '천재들이 받는 상'으로 알려진 맥아더 펠로십을 받아 한동안 생활비로 썼다고 한다.

 

그는 딜라일을 포함해 세 명과 결혼 생활을 했고 모두 이혼했다. 유족으로는 두 아들과 두 손자가 있다.

 

한서하 기자 silvertimes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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