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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실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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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최성남 | 기사입력 2022/04/22 [16:45]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최성남 | 입력 : 2022/04/22 [16:45]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김종두(효학박사, 한효총 사무총장)

 

 필자가 운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35년의 군복무와 연관이 깊다. 사관학교 교육과정과 군 생활을 통하여 부모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때문이다. 그것은 유년시절의 불효를 뉘우치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어머니의 파란만장하신 삶을 생각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12살(1925)에 민며느리로 시집오셔서 15세에 한 살 위의 아버지와 혼례를 올리시고 18살에 큰 누님을 낳으신 후 11남매(4남7녀)를 두셨지만 1남2녀를 잃고 8남매를 성장시키셨다. 맨 끝으로 아들 삼형제를 두셨는데, 형을 서른여덟에, 필자를 마흔에, 동생을 마흔 넷에 얻으셨으니 필자는 노인 자제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검게 탄 얼굴로 밭을 매고 계실 때가 많았다. “우리 아들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하시며 안아주시고 볼을 맞대 비비시면서 풀 섶에 놔뒀던 누룽지나 삶은 고구마를 주시곤 하셨다. 그러셨던 어머니는 아들 3형제를 가르치기 위해 농사일과 함께 생선장사, 과일장사 등으로 외지에 나가 계실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멀리서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릴 때면 “저 차를 타고 어머니가 오시려나.”라는 간절함으로 기다리기도 했다. 특히 학교성적 1등을 놓치지 않던 형은 부모님께 큰 기쁨을 드린 탓에 어머니는 힘든 삶을 사시면서도 웃음과 함께 사랑을 듬뿍 주신 분이 우리 어머니시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기 기침을 하시는 듯싶더니 요강에 반 사발 정도나 각혈(咯血)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큰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필자가 중학교2학년, 형이 3학년이었고, 어머니 연세는 57세이셨다. 병원에 모실 돈이 없었던 두 형제는 각혈에 좋다는 호박씨를 구해다 드시기 좋도록 해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병치레를 많이 하시던 어머니께서는 건강을 회복하셨지만 아버지께서 72세 때 들에서 일하시던 중에 혈압으로 쓰러지셔서 돌아가셨다 . 그 때 필자 나이 29세 대위 때였다. 건강을 회복해 주신 어머니, 첫 번째 감사함이다.
 
두 번째 감사함은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시고도 백세를 넘기시고 장수하셨다는 점이다. 큰 아들이 공부를 잘했던 탓에 둘째 아들인 필자가 농사를 지어야 할 처지였지만, 둘째 누님의 도움으로 서울의 야간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막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장교가 된 필자는 부모님께 받은 논과 밭을 동생에게 양보했다. 그런 탓에 필자는 열심히 군 생활을 해서 진급하는 것이 아내에게 미안함을 갚고, 세 딸을 키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열심히 공부해서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마침내 전역(轉役)과 함께 경민대학 효충사관과 대학교수가 되어 어머니께 기쁨을 드릴 수 있었다. 만일 어머니가 아버지처럼 일찍 돌아가셨다면 필자가 열심히 공부할 의지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진급할 때마다 아버지 산소에 인사드리려 성묘가면 어머니는 많이 기뻐하셨다.
 
세 번째 감사함은 치매로 요양병원에 가시지 않으시고 낮잠을 주무시던 중에 편안히 눈을 감으신 점이다. 필자는 아침저녁 부모님 사진을 보면서 안사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당시에는 임종을 못한 죄책감이 컸지만 지금은 감사를 드리게 된다. 필자는 동생과 약속하기를, 만일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시면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했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들판에 있어야 할 동생 내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 필자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시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름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매주 주말에 어머니를 찾아뵙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고, 둘은 찾아뵈었던 내용을 주제로 하루에 다섯 차례씩 전화를 드려서 외롭지 않게 해드린 일이며, 세 번째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소재로 코칭하는 것이었다. 소 마릿수에 대해 묻거나 어머니가 가지고 계신 용돈을 세시게 해서 스스로 기뻐하시게 한 일이다. 당시 동생은 소를 35마리 정도를 키우고 있어서 송아지를 낳는 횟수가 잦아 어머니께는 큰 기쁨이었고, 용돈 100만원 정도를 가지고 계셔서 용돈을 세보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셨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무는 고요히 있으려하나 바람이 그냥 놔주질 않고, 자식은 부모님을 봉양하려고 하나 기다려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고 했다. 효 실천은 3단계가 있다. 부모님 걱정을 덜어드리는 ‘낮은 단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높은 단계’, 그리고 내가 잘 되어 기쁨을 드리는 ‘더 높은 단계’이다. 효실천 3단계 기법을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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