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엇이 중요한가 깨달음 얻어”
1980년 미국에 유학하던 시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시고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바뀐 적이 있다는 선생님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에 이미 생물학자로서 공부를 하시는 과정이었을 텐데 ‘이기적 유전자’가 선생님께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도 생물학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 중에도 도킨스의 이론을 모르는 사람도 무지무지 많다. 이게 굉장히 혁신적인 관점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내 유전자가 내 삶의 주체다’라는 거는 굉장히 혁명적인 관점의 변화다. 그 변화를 그날 밤에 경험하고 나는 세상이 다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많은 어쩌면 모순 같은 일들이 관점을 달리 갖고 보니까 다 보이더라. ‘그렇지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거겠지’ 세상이 막 보이기 시작하니까 그 환희로 미치겠더라. 어렸을 때부터 ‘왜 사람들은 저러고 살지’ 뭐 이런 세상살이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게 있었는데 그게 설명이 되기 시작하니까 와 미치겠더라. 그 흥분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한테는 너무나 기가 막힌 경험이었다. 2009년에 도킨스를 만나서 이런 얘기를 둘이 나누다가 둘 다 똑같이 한 얘기가 ‘근데 그 다음에 조금 가다 보면 허무감, 허무, 약간의 비관 이런 게 몰려 들어오지 않더냐’였다. 도킨스도 그런 경험이 많았다. 학생들이 찾아와서 ‘삶의 의미가 뭐냐. 나는 왜 살고 있느냐. 유전자가 나를 조정하고 있다면 나는 뭐하고 있는 거냐. 자살 충동이 생긴다’고 말한다. 나도 그런 학생들이 참 많이 온다. 사회학과 졸업반인데 4학년 학생이 제 수업을 듣더니 ‘저 4년 동안 공부했거든요. 사회학 공부했는데 선생님 말씀 듣고 나니까 전체가 다 흔들려 버리는데 저 어떻게 하면 좋아요’ 여기 와서 우는 아이도 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한 번도 살면서 목숨을 끊는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 책 읽고 몇 달 후에, 한두 차례 언뜻언뜻 ‘산다는 게 뭐지. 내가 뭐 하러 살고 있지? 그러면 이 모든 게 다 유전자가 하고 있는 일에 같이 덩달아 춤추고 있는 건데 내가 구태여 그렇게 살 이유가 뭐지. 그냥 막 끝내 버려도 별로 이상한 것 없네’ 그런 섬뜩한 생각이 들더라. 내가 내 삶의 주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 않은가 도킨스가 ‘넌 그럴 때 어떻게 얘기 하냐’ 도리어 묻더라. ‘글쎄 그러면 내가 먼저 얘기할까.’ ‘그러라고.’ 난 그 아이들에게 ‘여기서 멈추면 안 되고,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생각하고, 더 열심히 파고들어 봐라’ 그렇게 얘기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어느 글에서 그렇게 쓰고 욕먹을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 혹시 그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묘한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더라. ‘어차피 이게 내 책임이 아닌데. 유전자 책임이잖은가. 내가 이 세상에 온 것도 유전자 책임이고 내가 뭘 하고 가든 유전자 업적이지 내 업적도 아닌데. 그럼 뭐 나는 신나게 즐기다 가면 되는 거네.’ 그런 마음의 평안이 어느 순간에 오더라. 이게 너무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어쩌면 그 이전에 나도 세상사에 바라는 것도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내가 ‘어떻게 하든 저 사람보다 먼저 이걸 해내야지. 내가 돈도 더 벌어야지’ 욕심도 많았다. 묘하게 그 순간을 지나고 난 다음부터 욕심도 없어지고, 세상에 그렇게 원하는 게 별로 없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상을 포기했느냐? 그건 전혀 아니다. 나는 열심히 적극적으로 산다. 그런데 내 행위에 보답이 안 와도 그렇게 섭섭한 생각이 안 든다. 그래서 내가 이게 마치 해탈한 건가 하는 겁 없는 발언을 하게 된 거다. 굉장히 마음이 편해졌다. 실제로 내게 유혹이 많이 온다. ‘장관 해라, 국회의원 해라.’ 다 고사했다. 자리에 대한 욕심도 거의 없다. 생태원장도 안 하려고 몇 번을 고사하다가 할 수 없이 했다. ‘장’자리에 대한 욕심도 없고 어떻게 보면 세상을 마치 관조하듯이 살게 된 것 같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실제로 내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학창생활 할 때를 돌이켜 보면 나는 충분히 화려한 삶을 추구할 가능성이 대단히 농후한 사람인데 어쩌면 그때의 깨달음이 비교적 나를 올바르게 살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저녁시간에 전혀 외부활동을 안 한다. 강연도 많이 하고 별의별 것 많이 해도 다섯시 이전에 끝내고 저녁 시간은 항상 가족과 함께 하고, 주말에는 절대 밖에 안 나온다. 가정적으로 살지만 사회활동을 못 하는 건 아니잖나. 누구보다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살지만 나는 내 삶을 잘 콘트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 아홉시 이후에 서너 시간은 언제나 나만의 사간을 가지고 있다. 그 시간에 논문 읽고 논문 쓰고 다 하니까 책도 여러 권 쓸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을 가능케 했던 것이 그때 얻은 깨달음이었다. 세상에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거를 내 나름대로 볼 수 있게 됐다. 명예나 자리나 그런 거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정신 못 차리고 사는 거 아닌가. 지금도 오지랖이 넓다. 세상의 온갖 일에 다 끼어들어서 사는데 그게 내 삶을 뒤집어엎을 정도로, 내 삶을 망가뜨릴 정도로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항상 저녁이 있는 삶을 산다. 그래서 그냥 나는 좋다.”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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