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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칼럼] 나는 한일가왕전을 보고 있다:실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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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칼럼] 나는 한일가왕전을 보고 있다

이국영 기자 | 기사입력 2024/04/13 [13:54]

[정재학 칼럼] 나는 한일가왕전을 보고 있다

이국영 기자 | 입력 : 2024/04/13 [13:54]

 

나는 한일가왕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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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시인 ․ 칼럼니스트)

 

벚꽃이 피는 날부터 다시 TV 앞에 앉았다. 벚꽃에 앞서 목련이 피고 앵두꽃도 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일가왕전을 봐야만 했다. 화면 가득 아이코가 있고 리에가 있고 마코토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경쟁이 아름다운 것은 꽃들만이 아니었다. 인간도 꽃들처럼 향기가 다르고 색깔이 다르며 하늘을 향한 높낮이가 다르고 크기가 다른 법이었다. 저마다의 다른 아름다움이 경쟁 속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걸 지켜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탐색전에 이어 경연이 2회를 넘어갈 때, 비로소 나는 일본의 꽃들에게서 공통점을 찾았다. 7인 모두 청량한 맑은 목소리의 소유자들이었다. 잡티가 섞이지 않는 푸른색. 바다빛을 닮은 목소리들이었다.

 

아무리 중저음의 목소리일지라도 소리의 바탕엔 멀리 태평양의 푸른 바닷물이 보였고, 눈 내리는 날, 싸하게 코끝을 스치는 북해도의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트롯의 스펙트럼에 보이는 그녀들은 단 한 가지 푸른색의 여인들이었다.

 

린을 비롯한 우리 가수들은 다양한 색깔의 목소리와 개성이 다채로운 가수들이었지만, 일본의 가수들은 푸른색의 향기와 서정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푸른색 한 가지로도 이렇게 섬세하고 다양한 표현이 있다는 것에 나는 놀라고 있었다.

 

카노 미유의 파아란 소녀스러움과 아이코의 청보라빛 순결한 손짓과 아즈마 아키의 푸른색 상냥함을 보았다. 마지막에 리에의 원숙한 서정 속에서 푸르름이 녹아든 여인의 웃음을 보았다.

 

후쿠다 미라이도 나츠코도 마코토도 각자 농도가 다른 입술과 홍조를 띤 눈빛과 파아란 유혹이 있었고, 특히 마코토의 노래 속에는 재일교포라는 핏줄이 안아주는 정스러운 배경이 있었다.

 

그녀들은 파아란 단 한 가지 색깔 속에 사랑과 이별, 유혹과 환희, 청순과 소녀의 꿈을 표현해 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들에게서 물결치는 푸른 파노라마를 보았다.

 

그동안 가끔 엔카를 접해본 적은 있었지만, 감탄을 한 적은 없었다. 그저그런 사랑노래나 하는 트롯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의 트롯엔 다양한 쟝르가 있다. 국악부터 댄스까지 우리의 트롯은 그 영역이 상상을 초월한다. 발라드나 클래식까지 우리의 트롯은 모두를 조화시키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 속에 노래가 있고, 달이 뜨면 달빛 속에, 민들레가 피면 민들레꽃과 함께 하는 노래, 주고받는 술잔에도 달을 뜨게 하는 힘이 우리 노래에는 있었다.

 

언어 또한 최상의 감각어를 지니고 있다. 소리를 표현하는 언어이기에 노래의 흐름이 자연스러울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어는 그렇지 않다. 특히 일본어가 갖고 있는 한계, 즉 발음의 초성에 경음(ㄲ)이나 격음(ㅋ)이 노래의 흐름과 감성을 끊어놓는다는 것에 이맛살을 찌뿌린 적이 많았다.

 

노래 가사에 물흐르는 듯한 유성음이 많은 우리말에 비해, 일본어는 가사의 의미와 감성의 전달에 무리가 있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춤도 보기 좋았다. 그러나 춤은 좀 영글지 않은 직선적인 각이 보였다. 다듬어지지 않는 몸짓처럼 보였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춤이 흥을 타지 못하는 까닭일 것이다.

 

'흥'은 어깨로부터 나온다. 우리의 춤에는 어깨로부터 두둥실 떠오르는 보름달 같은 '흥'이 있다. 그러나 일본가수들은 그런 것이 없었다. 그러니 누가 봐도 그냥 즐거운 몸짓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맑게 출렁이고는 있었지만, 단전 저 밑에서 나오는 호흡의 깊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노래의 진폭이 좁게 느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노래를 부르기 전, 우리 가수들은 몰입의 과정을 갖는다. 충분히 노래 속에 자신을 담고나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노래와 자신이 일체(一體)가 된 후에 부르는 린과 박혜신, 별사랑을 보면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펙트럼 속에 벋어나오는 파아란 단 한 가지 색만으로도 일본의 그녀들은 삶이 주는 모든 걸 담고 있었다. 기쁨과 사랑과 즐거움과 미움이 푸른 하늘 위로 조각조각 비산(飛散)하는 아름다움이었다.

 

봄 한철 속에 모란이 지고, 철쭉이 피고, 봄비가 내리는 파아란 날 파아란 행복 속에서 나는 지금도 TV 앞에 앉아 있다.

 

(다음은 박혜신을 비롯한 우리 가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부족한 글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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