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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흥봉 (전) 장관 인터뷰 어떻게 지내십니까:실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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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흥봉 (전) 장관 인터뷰 어떻게 지내십니까

최지정 기자 | 기사입력 2023/12/11 [17:10]

차흥봉 (전) 장관 인터뷰 어떻게 지내십니까

최지정 기자 | 입력 : 2023/12/11 [17:10]

차흥봉 () 장관 인터뷰    어떻게 지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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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봄교육에서 앞으로 삶이 중요(Well-Ageing)’ 강의를 하고 돌아오는 차흥봉(81) 보건복지부 () 장관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담 발행인

 

- 건강해 보이십니다, 건강관리에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습니까?

 

특별한 비법은 없고요 제가 이제 80세가 넘었습니다. 음식은 골고루 편식하지 않고 가급적이면 제시간에 식사를 하고 치아 관리도 열심히 하며 매일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친구와 수시로 만나고 강의도 나가고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 요즘(Well-Ageing)’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시고 강의하신다는데?

 

웰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 되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좋다라는 뜻이지요. 결국은 좋은 인생갈이 즉 풍요롭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자는 뜻이지요. 웰빙, 웰에이징, 웰다잉 모두가 한결같이 행복하게 좋은 생활과 좋은 죽음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오복이라는 좋은 말이 있잖습니까. (), (), 康寧(강녕), 攸好德(유호덕), 考終命(고종명), 바로 이것을 좀 더 학술적으로 풀이와 함께 방법을 구체화시켜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훈련입니다.

저의 삶이 바로 웰빙과 웰에이징 그리고 웰다잉을 추구하는 자체입니다.

 

- 사람을 평가하려면 살아온 과정을 보면 안다는데요

 

저도 참 어렵게 모진 고생을 하며 우리 세대의 일반 서민과 남 다른 게 없습니다. 19421110일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면의 산골짜기에서 연안 차 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빈곤, 질병, 무지, 불결, 나태 등 5대 빈곤을 체험했어요. 양식이 없어서 우는 어머니 모습 보며 자랐으며, 질병의 고통 속에도 병원에 갈 수 없는 환경이었고요. 제가 어렵게 의성초등학교, 의성중학교, 그리고 부모님의 배려로 대구 경북대학교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나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꾸고 직장 생활을 하던 중 1961년 여름방학 때 서울대 다니던 친구 문태길군이 서울로 가면 공부할 수 있다며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고 장학금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서울로 가자는 말을 듣고 그 이듬해 친구의 권유로 공부를 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복지과에 입학하고, 3학년 때 군대 36개월 복무하고 4학년에 복학하여 졸업하였습니다.

독학으로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석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생각해도 내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 공부를 잘하셨는가 봅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셨다니 졸업 후의 여정은

 

졸업 후 곧바로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을 마치고 첫 직장이 청와대 공무원이 되었고

일 년 후 결혼을 하였습니다.

 

- 청와대 근무한다면 시체말로 혼인 발이 좋을 텐데요? 결혼생활은

 

사실 청와대 근무한다니까 여러 군데에서 부잣집 등 많이 청혼이 있었지만 그땐 순수하게 시골 고향에서 중매로 결혼을 하였으며 당시 집사람은 대구 효성여자대학교(현 가톨릭대학)약학과를 졸업과 얼마 안 되어 결혼했고, 막상 결혼은 했지만 돈이 없으니 겨우 결혼축의금 40만 원으로 35만 원에 부엌도 없는 양옥 2층 서재를 계약했는데 부엌이 없어서 물 긷고 설거지하느라 엄청 고생했습니다. 그 당시 봉급 1.7만 원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매달 만 원을 보태주셔서 2.7만 원으로 겨우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생 역전이 집사람이 제약회사에 취직이 되고 맞벌이 부부로 5~6년 돈을 모은 것이 400만 원, 거기다 300만 원 대출받고 방하나 전세 주고 해서 800만 원짜리 응암동에 난생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후 수유리에 조그만 약국이 있다고 하여 응암동집을 2,450만 원에 팔고 수유리로 옮기고 약국에 세를 얻어서 어느정도 기반(?)을 잡았습니다.

저는 매일 같이 야근이다 뭐다 하면서 제대로 집사람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아 참 오늘이 124일이군요, 결혼기념일입니다.

 

- 사모님께 꽃다발이나 케이크라도 선물해야겠네요

 

이제 까지 별로 챙기질 않았으니---

 

- 청와대 근무 후 좋은 보직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복지부를 선택 하신 동기

 

청와대 근무 6년 마치면 부서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굳이 복지부를 택한 이유는 전공이 사회복지이고 또한 젊었을 때 어려운 생활을 하다 보니 어려운 사람들에게 복지를 혜택을 주고 싶은 마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요.

1970년대 이후 보건복지부 사회과장 시절에는 사회복지업무 빈곤, 질병, 소외, 고통 받는 사람들의 문제와 사회복지정책 업무를 다루었고. 1999~2000년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에는 국민기초 생활보장법 제정을, 2000년제도 시행과 24일 음력 설날 청와대 행사, 사회복지의 날 제정을 추진했습니다.

어릴 때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쌀이 없어 밥을 굶는 일이 다반사 다 보니 어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그리고 어릴 때 부스럼 등 피부병이 삶을 굉장히 힘들게 한 것이 생각나서 국민 누구나 좀 더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제안하게 되었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관심 갖고 지원해주셔서 세계에 드문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오늘날의 우리 국민 모두에게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가난 체험, 빈곤 체험을 바탕으로 국민의 가난 문제 해결을 위하여 고민했습니다.

 

- 보건복지부에서 공직생활 중 의료분업과 노인 무임승차에 대안을 최초로 도입 동기는

 

제가 복지부 근무할 때입니다.

1979년 모스크바 출장을 다녀와 소련처럼 노인 대중교통 무임승차 제도를 도입하자고 건의했어요. 의료보험 일원화를 주장하다 정권의 눈 밖에 나 보사부를 퇴직했어요.

고령사회의 노인 문제와 같은 거시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 미시적 차원에서 개개인 노인이 어떻게 좋은 노년을 살아가고 성공적 노년 생활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은 젊었을 때의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젊음을 찬양하고 생애 최고의 황금기를 말하지만 노년이 되어서는 젊었을 때의 심어 논 것을 수확하는 것으로 첫째 장수의 복이며 둘째는 장수하되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값, 밥값에 아쉬움이 없어야 하고 셋째 건강해야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려서 등산도 할 수 있는 건강이 되어야 되고, 넷째는 친구와 더불어 희로애락을 같이 할 수 있으며, 존경보다는 사랑받는 사람으로,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다섯째는 9988, 234로 건강하게 살다가 후회 없이 웃으며 세상과 이별하는 것이 바로 웰에이징이고 웰다잉입니다.

보건복지부 공무원 시절에는 노인 문제와 노인복지 정책, 제도에 신경을 썼으며 보건복지부 사회과장 시절에 노인복지정책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1980년 경로우대제(노인지하철 무료제 등) 창안 시행하였고, 1981년 노인복지법을 기초하였습니다. 의료보험 제도 창설하여 지역의료 보험시범사업 (1981~82)을 하였습니다. 1983년부터 1997년까지 한림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교수, 부총장을 지냈습니다.

이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복지부로 돌아왔으며. 19992월부터 같은 해 5월까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19995월부터 20008월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어요.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에는 2000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설립하였고, 건강보험통합을 완성하였습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국민연금제도를 완성하여 1999년 전 국민연금 가입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경로연금, 기초노령연금, 기초연금 도입과정을 창안하고 한림대 교수로서 노인문제 연구, 노인복지정책 자문을 하였습니다. 한국노년학 회장, IAGG 세계노년학회장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설계, 시행을 시도하였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재임 중 의약분업 등 3대 정책(의약분업·기초생활 보장제·건보 통합)을 추진한 것이 가장 보람된 일입니다.

 

- 정년퇴직 후 제3의 인생기 (신노년기)의 설계와 꿈은 무엇입니까?

 

65, 2008년 대학교수 정년퇴임 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였는데 정년퇴임 후 새로운 일을 추진한 것은 2008년 고향 사업으로 노인복지 모델을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노력하였습니다. 2009년 한국고령사회비전연합회를 창립하여 노인문제연구, 노인교육, 노인역할 증진 사업, 신노인운동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2008~2017년 국제노년학 노인의학회(IAGG)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그리고 2013 서울 세계노년학대회 준비와 대회 개최를 하였고 2013~2017년 세계노년학회장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2011~2016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으로 선임되었고 사회복지 분야를 봉사하였습니다. 2018~2021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표이사로 아동 복지 분야 봉사를 하였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생애 설계, 미래시간을 위한 시간 계획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마음 관리(心耕), 마음 투자 중요함을 체험한 일이 있었으며, 그리고 제가 고교 시절 63년 전 고교졸업 시 앙케트에, 10년 후 자화상은 서울 종로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으로 답변하였었는데 지금 결과는 63년 후인 현재 서울 강남대로를 활보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꿈을 가지고 노인 문제 연구, 사회복지 분야 활동을 지속하고자 합니다.

 

- 노인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하셨는데 현 우리나라 노인회에 대해서 한 말씀 하신다면

 

생활환경이 많이 나아지고 건강수명이 늘어난 것은 경제 수준이 말해주고 있습니다만 노인은 어디까지나 존경받는 노인 즉 경로효친 사상이 현재는 많이 퇴색되고 있음이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그리고 노인들의 경륜이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인데 노인들의 노욕은 노후를 망가뜨리는 것 같아 안타깝고요 특히 노인들의 선거제도를 보면 초등학교 반장선거보다도 더 유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선거에 돈 봉투가 만연한 것을 보면 비전 있고 사명감 있는 올곧은 사람은 회장이나 리더가 되기 쉽지 않는 풍토가 조성 되어 있음은 매우 우감스러운 일이며 스스로 노인들의 조직과 위상을 퇴보시키는 것 같아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 끝으로 Well-Aging 삶을 실버세대에 대하여 하고 싶으신 말씀은?

 

우리는 인구 고령화 접어들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조건은 돈과 건강으로 요약 됩니다. 관계, 배려, 활동적인 충분조건으로 사회적 관계 새로운 제2막 인생을 살아야 하며, 앞으로 삶이 발전가능 하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30년은 인생을 계획하여 멀리 바라보고 목표를 설정하되 천천히 인내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온 경력을 바탕으로 재탄생을 꿈을 꾼다면 꿈은 이루어질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의 노후는 밝고 희망찬 삶이(well aging)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 자녀와 손주는?

 

딸과 아들 2명이고 손주가 5명입니다.

다복 하십니다. 건강하시고 웰 에이징 사업이 많은 효과를 기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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