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와 글래디에이터 유주열 외교칼럼리스트
글래디에이터는 글래디우스(劍)를 가지고 싸우는 사람으로 검투사로 번역된다. 세계적 대제국 로마
는 한쪽에만 날이 있는 칼(刀)과 달리 양날에다 끝이 뾰족한 그들의 검(劍)을 가진 용맹한 글래디에이터를 주력으로 주변의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 지중해를 중심으로 방대한 영토를 확보했다.
고대 로마의 건국신화는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 전쟁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리스 동맹군의 내침으로 10년에 걸친 공방전에도 견고했던 트로이 왕국은 그리스군이 남겨둔 이른바 ‘트로이 목마’에 속아 허무하게 함락된다. 트로이 장군 아이네이아스는 불타는 트로이를 뒤로하고 일족을 이끌고 탈출에 성공한다. 그들은 이탈리아반도 서해안 라티움에 상륙하여 선주민 에트루리아인(투스키)을 정복하여 아펜니노산맥의 알바산 기슭에 새로운 도시국가 알바롱가를 건설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 해 숙부에게 권력을 빼앗긴 알바롱가의 실비아 공주가 그녀의 미모에 반한 전쟁의 신 마르스와 사랑을 나눈 후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쌍둥이 형제를 낳는다. 공주는 국왕이 된 숙부의 눈을 피해 쌍둥이를 바구니에 담아 테베레강에 띄워 보낸다. 테베레강 하류 갈대숲에 걸린 바구니는 지나가던 암컷 늑대에 의해 건져져 팔라티노 언덕의 동굴에서 늑대의 젖으로 자란다.
성장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근처 7개 언덕 중에서 도시국가를 세울 장소를 두고 다투다가 전쟁까지 벌인다. 팔라티노 언덕을 중심으로 하는 로물루스는 아벤티노 언덕에서 반발하는 동생 레무스를 패배시킨다. 형 로물루스는 BC 753년 나머지 5개 언덕의 세력을 규합, 자신의 이름을 딴 로마를 건국한다. 로물루스는 로마인들에게 조세와 징병을 공정하게 부과하는 한편, 장래 건강한 군인을 탄생시킬 여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아펜니노 산속의 사비니에서 여인들을 약탈, 로마 남성과 강제 결혼케 하여 차세대 로마의 기틀을 세운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는 전쟁의 신 마르스의 아들이고, 용맹한 늑대 젖을 먹고 자랐기에 그의 후예 로마인들은 무예를 좋아하고 싸움을 잘하여 전쟁에서 항상 승리, 방대한 영토를 확보했는지 모른다. 이러한 로마인의 기질이 글래디에이터(검투사) 경기에 열광하도록 만들었다. 로마에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이 완공되던 2세기 전후에는 그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콜로세움에서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검투사가 코뿔소, 사자 등 야생동물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도 보여주어 로마시민을 즐겁게 했다. 흔히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콜로세움이라고 부르지만, 콜로세움은 경기장이 아니고 거대한 입상(Colossus)이란 뜻이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에게해의 그리스 로도스섬에 있던 태양신 입상을 모방하여 자신의 거상을 만들도록 했다. 이 거상은 높이 30m로 지금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비슷한 크기였다. 그 입상이 유명해져 원형 경기장 대신에 거상(콜로세움)이 있는 곳으로 지명까지 바뀌었다. 정식명칭은 경기장을 지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가문의 이름을 딴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이라고 불렀다.
64년 일어난 로마 대화재 책임을 신흥 종교 기독교에 덮어씌운 네로 황제는 가장 인기가 없는 황제였다. 그의 사후 3명의 황제가 불과 1년 안에 암살되자 원로원에 의해 황제로 천거된 군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75년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에 있던 호숫물을 빼고 그곳에 원형 경기장을 지었다. 네로 황제의 콜로세움 인근이었다. 네로 황제의 폭정과 사치로 로마의 국고는 텅텅 비어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없었으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장남으로 황제가 된 티투스가 유대국 예루살렘에서 약탈한 전리품으로 건축비에 충당했다고 한다.
평민 출신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비어 있는 국고를 채우기 위해 “돈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로 인류 최초의 유료화장실을 설치한 인물이다. 그는 장군 시절에 네로황제가 주최한 연회에 참석했다가 황제가 자작시를 읊고 있는데 졸았다는 죄로 시골에 유배되어 2년간 양봉을 했다는 경력이 있다. 그 사이 유대 지방에 반란이 일어나 사령관으로 복직하여 나중에 황제가 된 인물이다. 그는 로마에서 처음으로 대리석 대신 화산재를 이용한 콩크리트로 경기장을 건설했다. 이 경기장은 그의 장남 티투스 황제가 완성하고 준공기념으로 100일간 검투사 시합이 개최됐다. 글래디에이터는 보통 이민족 출신의 노예나 전쟁포로 중에서 체격이 좋고 영리하며 거칠게 잘 싸우는 사람 중에서 선발된다. 가장 용맹한 글래디에이터들은 황제와 원로원 그리고 로마시민이 보는 가운데 콜로세움에서 싸운다. 때로는 콜로세움에 물을 채워 가상해전에서 적과 아군으로 구분, 실전처럼 싸우기도 한다. 콜로세움에서 승리한 글래디에이터는 일약 영웅 대접을 받고 황제와도 가까워진다. 영웅적 모험담을 영화로 옮기길 좋아하는 영국의 리들리 스콧 감독은 글래디에이터 3부작을 구상하고 글래디에이터Ⅰ과 Ⅱ에 이어 세 번째 영화 글래디에이터Ⅲ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첫 편인 <글래디에이터>는 로마제국의 전성기로 팍스 로마나를 구가한 5현제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가 배경이다. <명상록>의 저자이기도 한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아울레리우스 황제는 다뉴브강 전투에서 게르만족에게 대승을 거둔 막시무스 장군을 총애했다. 역사와는 사뭇 다르나 영화에서 황제는 장남 콤모두스 대신에 막시무스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콤모두스가 이를 알고 황제를 암살하고 막시무스를 처형하려 하자 막시무스는 탈출했다. 그는 노예 상인에 붙잡혀 노예 신분으로 글래디에이터가 된다. 로마 최고의 글래디에이터가 된 막시무스는 아울렐리우스 황제의 복수를 위해 언젠가 콤모두스 황제와 싸우고 싶어 했다. 콤모두스도 막시무스를 자신의 손으로 처단하고자 스스로 글래디에이터가 되어 콜로세움에서 결투에 나선다.
두 번째인 <글래디에이터Ⅱ>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죽은 지 16년 후의 로마가 배경이다. 192년 12월 31일 12년간 로마를 통치한 콤모두스 황제가 죽자 로마는 대혼란에 빠진다. 로마의 변방을 지키는 5명의 군사령관이 자칭 황제로 선언하여 193년을 “5 황제의 해”라고 부를 정도였다. 5 황제의 마지막인 세베루스 황제는 8년간 통치한 후 211년 장남 카라칼라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고 죽었다. 로마는 카라칼라와 그의 동생 게타가 공동으로 통치하는 구조였다. 카라칼라 황제가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것은 그가 로마시민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한 번에 1500명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는 초대형 욕장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카라칼라 대욕장의 유적은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보존 상태가 좋아 로마시민을 위해 야외 오페라 극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공된 스토리로 보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북아프리카의 누미디아(지금의 알제리)를 침공한 아카리우스 장군은 점령지에서 포로로 잡은 한노(루시우스)라는 청년을 전리품 노예로 넘긴다. 한노는 가족을 죽인 침략자 아카리우스 장군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로마 최고의 글래디에이터가 된다. 한편 로마 황실에서는 아카리우스가 황제에 대한 반란의 죄목으로 체포되어 콜로세움에서 글래디에이터와 싸워 죽는 형벌을 받는다. 콜로세움에서 황제와 시민이 보는 가운데 한노와 아카리우스의 목숨을 건 결투가 펼쳐진다.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글래디에이터들이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이른바 ‘로마의 드림’을 이루는 것을 보면서 오늘날의 콜로세움과 최고 영웅 글래디에이터에 대해 생각해 본다. 미국이 로마라면 20세기의 콜로세움은 뉴욕이고 21세기 콜로세움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라는 생각이다. 20세기 뉴욕에서 승리하여 ‘아메리카 드림’을 이룬 최고의 글래디에이터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이고 21세기 실리콘 밸리를 석권한 글래디에이터는 기업가 일론 머스크가 아닐까. 트럼프 대통령의 할아버지 프레더릭 트럼프는 독일의 서남부 바이에른 왕국의 칼 슈타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6세 때 1885년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왔다. 뉴욕에서 동향의 이발사를 만나 어릴 때 배워두었던 이발 기술로 6년간 이발사로 일했다. 그 무렵 캐나다 북서부 금광이 발견됐다. 프레더릭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골드러시 분위기에 편승, 현지로 달려가서 식당업과 금광 투자를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결혼하기 위해 일시 귀국 신혼부인과 함께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1905년 장남 프레드를 위시하여 두 아들을 낳고 뉴욕 맨해튼에서 이발소를 경영하면서 착실히 저축, 부동산 투자를 했다. 당시 세계 1차대전이 발발, 독일이 미국의 적국이 되어 독일 이민자들은 소리 없이 살아야 했다. 건강했던 프레더릭은 1차 세계대전 직후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한창 일할 나이인 49세에 사망했다. 장남 프레드는 아버지가 남겨둔 부동산을 이용, 건축과 임대사업을 하면서 3남 2녀의 자녀를 키웠다. 기대했던 큰아들 프레드 주니어는 항공조종사가 되겠다고 가출하여 프레드는 크게 실망했다. 프레드는 비행기 조종사는 '날개 달린 버스 운전사'에 불과해 장래가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차남 도널드에게 가업을 잇게 한다.
도널드는 13세 때 학교 폭력에 연루되어 규율이 엄격한 뉴욕 군사학교에 진학한다. 도널드는 그 후 브롱크스의 포담대학을 다니다가 본격적으로 회사 경영 수업을 받기 위해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로 전학했다. 8세 연상의 형 프레드 주니어는 알콜 의존증으로 조종사 일도 그만두고 43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도널드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도 형의 이러한 죽음과 관련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아버지의 부동산 회사를 기반으로 천재적인 거래의 기술을 이용해 호텔, 카지노, 골프장 등 부동산 사업을 세계적으로 확장했다. 트럼프 부동산 재벌은 1990년대 후반 뉴욕의 트럼프월드 타워 건설에 참여한 바 있는 한국의 대우건설과 제휴, 서울 여의도에 트럼프월드 아파트 건물 건축을 비롯, 트럼프월드 이름으로 부산 및 대구에도 진출했다. 여의도 아파트 모델하우스 개장 당시 도널드 트럼프가 방한, 테이프 커팅 행사에 참석하여 화제가 된 바 있다.
2000년대 초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NBC에서 방영하는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견습생)>에 진행자로 등장한다. 그는 많은 참가자를 탈락시키고 최후 1인을 남겨 트럼프 재벌기업 중 하나를 경영할 견습생으로 특채한다. 매회 도널드 트럼프가 탈락자들에게 내뱉는 “You’re fired(당신은 해고야)”와 최후의 1인에게는 “You’re hired(당신은 특채야)”가 명대사로 인기를 끌었다. 이 리얼리티 쇼는 도널드 트럼프의 전국적 인지도를 높여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제45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그리고 8년 전과 같은 “미국은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로 금년 대선에서 제47대 대통령으로도 재선됐다.
21세기를 대표하는 글래디에이터는 단연코 우주(Space X)와 자동차(Tesla) 산업의 선두 주자이면서 시대의 아이콘 일론 머스크라고 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는 1971년 영국계 아버지와 캐나다 출신의 어머니 사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롤 머스크는 엔지니어이면서 모험가로 가족과 함께 남아프리카 북부의 사막 오지 여행을 통해 자녀의 모험심을 키웠다. 일론은 컴퓨터 신동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매달렸다. 내성적인 일론은 친구와 노는 것보다 컴퓨터에 빠지거나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가 10세 때 부모가 이혼했다. 일론이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택한 것은 아버지가 많은 책과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이유였다고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일론은 징병을 피하고자 외가인 캐나다로 건너갔다. 캐나다에서 생활이 어려워 알바를 하면서 킹스턴의 퀸스대학에 입학했다가 199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으로 전학, 경제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1995년 21세기의 콜로세움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의 공학박사 과정에 합격했으나 컴퓨터를 통한 사업에 관심을 가져 학업을 포기했다. 그리고 학교가 있는 팔로알토에서 동생 킴벌과 함께 인터넷을 통한 지역 정보 제공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종래 옐로 페이지라 부르는 전화번호부를 컴퓨터로 전환한 사업이다. 회사 이름도 또 하나의 우편 번호(zip code)라는 의미로 집투(Zip2)였다.
도시 정보를 신문사에 공급하는 사업이 잘 되자 1999년 컴팩 회사에 매각하고 그 대금으로 온라인 금융서비스(은행) X.com을 창업했다. 미지의 상징 X에 대한 일론 머스크의 사랑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후에 피터 틸 등과 합작, 핀테크 기업 페이팔(PayPal)을 창업, 성공을 시켜 다국적 전자 상거래 기업 이베이(e Bay)에 15억 불의 거액에 매각했다. 일론은 페이팔 매각에 따른 자신의 몫 1억8000만 불 중 1억 달러로 스페이스 X를 2002년 창업한다.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이조스가 설립한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보다 2년 뒤였다. 화성에 인간을 살게 해야 한다는 일론의 어릴 때 꿈을 이루는 기반을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트럼프 선거 유세 현장에 나타나 트펌프 지지를 호소할 때 그의 재킷 안 티셔츠의 “화성을 점령하라(Occupy Mars)!”라는 문구가 살짝 보였다.
일론은 우주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2003년 창업된 전기차 회사 테슬라에도 투자하여 최고 경영자가 됐다. 1880년대 토머스 에디슨과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에서 승리한 니콜라 테슬라를 기리는 테슬라 전기차 회사는 승승장구, 미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공장을 건설, 생산하고 있다. 일론 모스크는 지난 대선에서 아버지와 동갑내기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베팅이 성공하여 인류역사상 최고액인 자산가치 4000억 달러를 만들었다. 일론은 공동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위세를 과시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공동수장으로서 그가 믿는 가치와 비전을 행동으로써 보여주며 시대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지난해 12.3 계엄선포와 탄핵정국에다 설상가상의 항공기 참변에 따라 온나라가 대혼란과 비통함에 빠져, 이번 새해는 어느 해보다 참담한 심정으로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시대 최강의 글래디에이터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최고 경영자가 주도하는 변화의 흐름을 재빨리 읽고 냉철한 전략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유주열의 ‘ 일론 머스크와 글래디에이터‘는 2025년 1월 3일 WorldKorean [유주열의 동북아 담설] 시리즈로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칼럼/에세이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