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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얼마나 잔인해야 사형을 시키는 것이냐?“
제주올레길 산책길에 죽임을 당한 어느 여인의 유가족들이 재판결과를 통탄하며 법정에서 내뱉은 말이다. 강간하고 나서, 얼굴을 못 알아보게 돌로 얼굴을 짓이겨버린 범인은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다.
그렇듯 대한민국에서 사형 선고는 웬만해선 내리지 않는 판결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형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약 60여명에 이르는 사형수가 있다.
사형을 언도 받았다면, 제주올레길 사건을 미루어 볼 때, 그들이 얼마나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을까는,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심지어 무기징역형을 받은 자가 수감 중에 살인을 저지른 일도 있다. 반성없이 다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은, 이들이 더이상 살아있어야할 이유가 없음을 증명해주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관계로 아직도 살아있고, 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잠재우는 관리비만, 일년 수십 억에 이르는 경비가 든다고 하였다. 벌써 사라졌어야 할 인간들이 국민의 세금까지 축내고 있는 것이다.
이뿐이랴. 요즘 사형수들은 인권을 말하며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일도 잦다. 자기들도 인간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불쾌한 일을 저지른 사법관들에 대한 고소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에 번지는, 법에 대한 불신(不信)과 가치관의 붕괴에 따른 혼란은 그 무엇으로도 해명이 어렵게 되었다.
"사람을 죽이면,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위의 말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출마 당시 한 말이다. 우리는 이 말을 듣고 박근혜를 얼마나 신임했는지 모른다.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박근혜는, 그러나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나는 사형제도 자체를 반대한다.“
사형을 시키는 것은 차치(且置)하고, 아예 사형이라는 제도마저 없애겠다는 문재인의 말이다.
그리하여 사형이라는 법정최고형은 있으나,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사형제도는 유명무실한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 아무도 이 형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사형제도가 인권시대 거슬리는 거추장스러운 법의 잡동사니가 된 것이다.
사형이 사라짐으로 해서, 우리 사회가 인권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어 범죄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오히려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풍조만 팽배해졌을 뿐이다.
폭행 현장에서 사람을 때리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에, "사형도 안 시키는데, 뭐."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회가 되었다. 주먹으로 먹고 사는 조폭들만 살판난 세상이 된 것이다.
국가가 살인을 할 수 없다는, 사형 포기 선언은 사형시킬 범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특히 과거엔 반드시 사형을 언도받는 죄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예를 들어, 간첩죄가 그렇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치른 이후, 북한과 관련된 범죄는 절대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6.25 동족상잔을 겪으며,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첩은 반항할 경우 현장총살도 마다하지 않는, 확실한 사형감이었다.
그러나 요즘 간첩들이, 설령 북한에서 보낸 남파간첩일지라도 사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없다. 주사파 같은 자생간첩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통진당 이석기를 보면서, 대한민국엔 간첩에 대한 사형제도 자체가 없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간의 행적을 볼 때, 문재인은 간첩 아니면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문재인이 사형제도를 없애겠다고 공언(公言)한 그 이유가 '본인에 대한 방어'였음을 깨달았다면, 당신의 판단은 너무 늦은 것이다.
덕분에 60여명의 잔혹한 살인자들은 대한민국 법을 비웃으며, 교도소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고 있다. 가끔씩 인권도 부르짖으며, 또 가끔은 같은 재소자도 죽이면서.
박근혜의 말처럼 저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면, 또한 법이 왜 준엄한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면, 60여명의 사형수들은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마약범죄가 급증하는 요즘이다. 어린 청소년에게 마약을 파는 행위만큼은 반드시 사형시키겠다는 한동훈 장관의 절규가 들려온다.
절규에 겹쳐, 살인자에 의해 잔혹한 죽임을 당하는 순간의 피해자들, 그분들의 간절하고 슬픈 얼굴도 겹쳐진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존속시켜야 하고, 사형은 집행되어야 한다.
사형제도는 모든 법률이 그렇듯 국민과의 약속이다.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무역제재를 각정할 때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한 많은 세상, 그냥 마치고 떠나게 하는 것도 자비(慈悲)를 베푸는 일은 아닐까. 사형수, 그들의 생명을 붙잡고 있어야 인권국가가 된다는 착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오늘은 5월 가정의 달에, 살인자에 의해 가정을 잃은 착한 사람들과 함께, 중국이나 일본 같은,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가 부럽기만 하다.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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