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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우계 성 혼(牛溪, 成 渾):실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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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우계 성 혼(牛溪, 成 渾)

최성남 | 기사입력 2022/09/02 [19:06]

효자 우계 성 혼(牛溪, 成 渾)

최성남 | 입력 : 2022/09/02 [19:06]

효자 우계 성 혼(牛溪, 成 渾)

 

P5-1  우계.jpg

 

 

사진 : 827일 경기 파주시에서는 제1회 우계문화제를 파주읍 향양리 우계사당에서 개최했다.

 

우계 성 혼(牛溪, 成 渾 1535~1598)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파주 우계(현 파평면 늘노리)에서 거주하였으며, 파주읍 향양리에 묘가 있다. 자는 호원, 호는 우계, 본관은 창녕, 대사헌을 지낸 세순의 손자이며, 청송 성수침(聽松 成守琛, 1493~1564)의 아들이다. 서울 순화방(현 순화동)에서 태어났으며 1544(중종 39) 아버지를 따라 우계로 이사하여 이곳에서 성장하였다.

 

청송선생이 풍병(風病)을 앓아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선생은 밤낮으로 부친을 부축하고 모셔 비록 한겨울과 무더운 여름철이라도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밤에도 물러가지 않았다

 

청송 선생께서 선생이 피로가 쌓여 병이 날까 염려해서 자기 방으로 물러가 쉬라고 하면 선생은 감히 그 뜻을 어기지 못하여 즉시 문밖에 나가서 처마 아래에 거적자리를 펴놓고 앉아 창가에 귀를 대고 부친의 숨소리를 살피다가 밤이 깊어 잠이 드신 뒤에야 잠시 물러가 가매(假寐)하였는데 옷에 띠는 풀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채 날이 밝지 않아 부친이 잠을 깨기 전에 먼저 방문 밖에 가서 앉아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문으로 들어가 문안을 올리곤 하면서 마치 자기 방에서 막 나온 것처럼 하였다.

 

부친의 증세가 위독해지자, 선생은 손가락을 잘라 피를 올리려 하였으나 손가락은 사람들이 항상 보는 것이니 효도한다는 이름을 얻으려는 혐의가 있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두 차례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올렸다.

 

그러나 선생은 평생 이 사실을 철저히 숨겨 자손들에게 말씀한 적이 없었으므로 아는 자가 극히 드물었다.

영천 신응거(靈川 申應渠)는 항상 말하기를, “우리 선생의 효행을 아는 자가 세상에 드물다. 선생은 일찍이 학행(學行)으로 이름나셨기 때문에 한 가지 선행(善行)으로 일컬어지지 못하는 것인데, 실제는 참으로 효자이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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